
영화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 NASA에서 실제로 일했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온 우주 개발 역사 뒤에, 이렇게 치열하게 계산하고 연구하던 여성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요. 단순히 감동적인 실화 영화가 아니라 인종차별과 성차별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켜낸 전문가들의 성장기라서, 보시고 나면 오래도록 여운이 남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을 뚫고 NASA에 선 흑인 여성 과학자들
히든 피겨스를 보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시대의 공기와 공간의 분위기입니다. 1960년대 미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주 개발과 기술 경쟁에 전력을 다하던 진취적인 나라처럼 보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면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느끼시게 될 거예요. 같은 건물에서 일하면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사무실에 배치되고, 화장실조차 “컬러드” 전용 시설을 이용해야 해서 비 한번 쏟아지는 날이면 먼 거리를 뛰어다니는 장면은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답답하게 다가옵니다. 더 답답한 점은 이 불합리한 구조가 누군가의 악의라기보다는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백인 직원들은 흑인 동료가 먼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사라진 시간만 보고 “왜 자리를 자주 비우느냐”고만 이야기하고, 회의실에 흑인 여성 과학자가 앉아 있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려지지요. 그런 환경 속에서 영화 속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항의하거나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캐서린 존슨은 누구보다 정확한 궤도 계산으로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남성 중심의 회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첫 번째 여성이자 흑인으로 서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회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기던 상사들도, 실제 작업 과정에서 캐서린의 계산이 없으면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태도를 바꾸게 되지요. 도로시 본 역시 공식적인 직함도,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실을 탓하기보다 “앞으로 이 팀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오는 IBM 컴퓨터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보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프로그래밍을 스스로 공부하며 흑인 여성 동료들에게도 그 지식을 나눕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자기 계발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고 공동체 전체를 끌어올리는 리더십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메리 잭슨은 엔지니어 자격을 얻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 백인 전용 학교에서만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어쩔 수 없다”는 말 대신 법정에 서는 길을 선택합니다. 판사 앞에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누군가는 첫 번째 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 한 사람의 용기가 제도 자체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순간입니다. 이렇게 히든 피겨스는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차별을 자극적으로만 소비하는 대신,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을 버텨냈고, 그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갔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단순히 “안타깝다”는 감정보다도 “나였다면 저 자리에서 무엇을 선택했을까”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우리가 알고 있던 NASA의 역사가 사실은 일부만 비친 이야기였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소제목을 통해 영화 속 차별의 현실과 그 속에서 빛난 여성 과학자들의 태도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시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인물들에 몰입하시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캐서린·도로시·메리가 보여준 용기와 전문성
히든 피겨스를 보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이름을 계속 떠올리게 됐습니다. 바로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이라는 주인공들인데요, 이 세 인물은 모두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이라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먼저 캐서린은 복잡한 수학 공식을 머릿속에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재적인 수학자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가 처음부터 존중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죠. 회의실은 남성 중심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중요한 문서는 남자들이 검토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캐서린은 단순 계산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취급됩니다. 그럼에도 캐서린은 포기하거나 불평만 하지 않고, 정확한 계산과 치밀한 검증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서 나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를 결과로 설명해 나갑니다. 존 글렌이 우주로 떠나기 전, 컴퓨터 대신 캐서린에게 마지막 계산을 부탁하는 장면은 그동안 그녀가 쌓아 온 전문성과 신뢰가 한순간의 행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느꼈습니다. 도로시 본은 또 다른 형태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공식적으로는 ‘슈퍼바이저’라는 직함도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 사실상 흑인 여성 팀 전체를 이끌고 있는 인물인데요, 시대가 컴퓨터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IBM 기계를 직접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새 기술이 들어오면 “우리 자리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 쉬운데, 도로시는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배워서 그 자리를 차지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더라고요. 혼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서 함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진짜 리더십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메리 잭슨은 유리천장을 정면으로 깨려는 인물입니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 백인 전용 학교에서만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많은 사람이 “그냥 포기하지 그래”라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메리는 한번 더 가능성을 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법정에 서서 판사에게 자신이 왜 그 수업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 첫 번째 여성이 되어야만 그 뒤로 다른 여성들도 따라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설득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단지 극적인 연출이 아니라,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통하는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단순히 불합리한 현실에 화를 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을 끝까지 갈고닦으면서 동시에 필요한 순간에는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히든 피겨스를 보고 나면 “실력이 있으면 언젠가 알아주겠지”라는 막연한 믿음 대신, 실력 위에 용기와 행동이 더해져야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서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풀어쓰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도 세 인물에게 흥미를 느끼시고, 이미 보신 분들은 각자의 인생에 이 메시지를 어떻게 적용해 볼지 한 번쯤 떠올려 보시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히든 피겨스를 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드실 거예요. “이건 단지 예전에 있었던 인종차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도 하는 말 같다.” 영화의 배경은 분명 1960년대 미국이지만, 그 안에서 인물들이 겪는 경험과 감정은 2020년대인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낯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회사나 조직 안에서 어떤 분은 공식적인 직함 없이 묵묵히 실무를 끌고 가고, 어떤 분은 열심히 일하지만 중요한 회의나 의사 결정 자리에서는 이름이 잘 언급되지 않기도 하잖아요. 히든 피겨스 속 흑인 여성 과학자들도 그런 위치에 서 있습니다. 분명 실력은 존재하는데, 제도와 인식이 그 실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단순히 “옛날에는 저랬구나”가 아니라 “형태만 조금 달라졌지, 지금도 비슷한 장면들이 곳곳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결국 ‘나의 전문성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가’와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특히 의미 있게 다가왔던 지점이, 세 주인공이 모두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선택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캐서린은 존 글렌의 귀환 궤도를 계산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내가 틀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믿고 끝까지 계산을 완성해 냅니다. 도로시는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탓하기보다는, 미래에는 컴퓨터가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깨닫고 먼저 공부를 시작하죠. 그리고 혼자만 그 능력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와 나누면서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만듭니다. 메리는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법정에 서서 교육의 기회를 요구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 세 사람의 행동은 모두 다른 방식이지만,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진짜 변화는 결국 누군가가 용기를 낼 때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냥 참고 넘기는 것도, 남 탓만 하는 것도 결국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니까요.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이 영화가 ‘기억’에 대해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우주 개발 이야기를 배울 때 대부분 남성 우주비행사, 유명한 남성 과학자들의 이름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히든 피겨스는 그 뒤편에서 묵묵히 수식을 계산하고 오류를 잡아내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지금까지의 역사가 과연 완전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나의 주변에서, 혹은 내가 속한 직장과 팀에서 진짜 수고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제대로 인정받고 있을까, 누군가의 공로가 그냥 ‘당연한 일’로만 취급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혹시 누군가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이 영화가 그런 점에서, 단지 “위대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히든 피겨스가 주는 가장 큰 위로는 “당신의 노력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지금 배우고 있는 것들, 지금 버텨내고 있는 환경, 지금 내 자리에서 쌓아 가고 있는 전문성이 언젠가는 분명 어떤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화처럼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용한 회의실 안에서, 작은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또는 후배 한 명에게 지식을 나누는 순간에서 드러날 수도 있겠지요. 히든 피겨스는 그 작은 순간들까지도 결국 역사를 구성하는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보고 싶다”, “혹시 지금 내 주변에 있는 히든 피겨스는 누구일까?” 같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한번 보고 지나가는 실화 영화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해 주는 조용한 응원 같은 영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